2026년 1분기 회고

2026년 1분기 회고

돌아온 회고
돌아온 회고

2025년 회고를 적으려고 했는데, 시간이 안 난다는 핑계로 결국 못 썼다. 매일 간략하게라도 일기는 쓰고 있으니, 나중에 한번 요약해서 올려보려고 한다.

24~25년을 돌아보면 정말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근데 지금은 갤러리나 일기를 뒤져보지 않는 이상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물가물하다. 강렬하게 남은 몇 장면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26년부터는 분기별로라도 간략하게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른다.

그리고 올해는 꽤 많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서, 기록해두고 꺼내 보고 싶다.


계속된 변화

또 새로 서비스를 만들었다. 이번이 아마 다섯 번째 정도 되는 것 같다. 작게 개선한 게 아니라 매번 완전히 뒤엎을 정도의 변화였다.

우리 회사는 “장학 카드” 라는 시장 반응 좋은 제품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이를 서비스에 잘 내재화하진 못했다. 말로는 장학카드와 앱이 엮여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챌린지로 장학카드 사용성을 높이자”는 방향이 크게 와닿진 않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만들어봤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반응이 있진 않았다.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장학 카드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장학 카드

그래서 이번 신규 서비스의 목표는, 외부 카드사의 오픈된 서비스를 빌려 쓰는 게 아니라 우리 서비스를 통해 장학카드를 활용할 수 있게 내재화하는 것이었다.

개발팀 인원이 많지 않은데도 학원 특성상 분리된 3개 서비스(학생 / 선생님 / 어드민)를 기획 시간 제외하고 한 달 정도 안에 만들어냈다.

참고로 우리 회사는 감사하게도 여러 회사에 투자를 받고 있고 그중 프라이머에서 우리 기수부터 기술 자문 CTO님이 붙었다.

네이버·카카오·당근에서 중요 직책을 맡으셨던 분이라, 직접 회사에 방문해 회의에 참여하시면서 테이블 설계나 어드민의 중요성 같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배울 점이 정말 많았다.

새벽에 한두 시간씩 나누는 스몰 토크를 통해서도 다른 초기 스타트업의 운영 방식 등 팀 운영에 대한 시야를 많이 넓힐 수 있었다.

학생 서비스에서 크게 갈렸던 부분이 있다. 투자 라운드가 얼마 안 남아서 빠르게 시장 반응을 봐야 했고, 익숙한 웹으로 빠르게 만든 뒤 PWA로 운영하다 추후 앱으로 전환하자고 팀 내에서 협의가 끝났다.

그런데 CTO님이 PWA를 탐탁지 않아 하셨다. 몇 줄이면 쉽게 되는 건데도 앱을 선호하셨고, 다른 프라이머 투자팀들이 Capacitor 웹뷰로 구현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결국 웹뷰로 전환했다.

결과적으로 이 과정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아니, 실패였다. Expo + Next.js 웹뷰로 가면서 콜드스타트, iOS 쿠키 이슈처럼 유지보수 포인트만 계속 쌓였고, 개발 속도도 덩달아 지체됐다.

앱의 불편함을 느꼈던 유저분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앱의 불편함을 느꼈던 유저분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찌저찌 앱은 출시했지만 성능도 속도도 내가 유저였다면 안 쓸 수준이었다.

여기서 많이 배웠다. 팀이 익숙한 기술 스택을 근거로, 좀 더 강하게 의견을 냈어야 했다. 일단 PWA로 시장 반응부터 보고 앱으로 전환해도 충분했을 거고, PWA가 정말 안 되는 이유가 뭔지 — 있다면 그걸 어떻게 핸들링할 수 있는지까지 — 더 파고들었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내 잘못이 크다.

그럼에도 연초에 앱 심사까지 통과하고 출시는 성공했다. 근데 사용성 문제는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개발팀 모두 잠 못 자고 1달간 개발만 했으니 번아웃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 와중에 나를 좀 긁히게 한 메시지를 보고, 설날 연휴 때 3일 안에 앱을 새로 만들어서 배포하겠다고 그냥 선언해버렸다.

사실 억울한 측면도 있었지만 틀린 말은 없기에, 일단은 그냥 빠르게 만들고 나 자신을 증명하고자 했다.

3일은 빡센 시간이었는데, 확실히 AI가 좋다. 피쳐 단위로 폴더 구조나 구현 방식을 잘 문서화해두면 생각보다 잘 구현해준다.

살짝만 터치해주면 된다. 그리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드는 목적 중 하나가 실험실인데, 거기서 쌓아둔 코드들을 잘 활용했다. Expo는 정말 최고의 프레임워크인 것 같다.

리젝 없이 3~4일 만에 배포 성공했다는게 기분이 좋았다.

미성년자가 쓰는 앱이라 부모님 인증 같은 인증 플로우에서 이탈이 많았는데, 이 부분을 특히 신경 써서 재시도 UX를 개선했다. 수치상 에러율과 문의가 압도적으로 줄었다.

아무도 신경 안 썼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건 기본 아닌가” 라는 말이 제일 긁혔던 부분이라 — 이걸 내 손으로 뒤집어낸 순간이 제일 후련했다.

다만 웹뷰라는 주제 자체는 여전히 나에게 큰 숙제로 남아 있다. 언젠가는 조금 더 깔끔하게 읽히는 웹뷰 코드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

생각보다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분야인 것 같다. “토스”, “당근” 처럼 웹 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회사들에게 정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성장통

초기 스타트업 개발자로서 사수 없는 환경에서 일한다는 건 생각보다 커리어 측면에서 하이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생각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최대한 좋은 리턴 값을 얻기 위해 평소에 좋은 개발자분들과 최대한 많이 이야기하고, 코드 리뷰를 받거나 계속해서 면접을 보면서 내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항상 점검하려고 한다.

좋은 행사가 있으면 프론트·백엔드 가리지 않고 참여한다. AI를 잘 활용하려면 한 영역에 갇히기보다는, 여러 갈래를 넓게 훑을 줄 아는 감각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정보를 받아보는 창구도 가능하면 국내에만 두지 않으려 한다. 특히 AI 분야는 — 해외에서 한창 화제가 된 기술이나 새로운 서비스가 국내에 소개되기까지 보통 한두 박자 정도의 시차가 있다.

그래서 해외에서 주목받는 AI 기술이나 서비스는 물론이고, 직장인 대상으로 평이 괜찮다고 소문 난 부트캠프나 행사까지 — 눈에 띄면 먼저 찾아보고, 좋아 보이는 건 팀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공유하려고 한다.

초기 스타트업에서 이런 고민을 나만 하는 건 아닐 거다.

변화가 많은 스타트업에서 내가 아는 지식을 100% 활용해 코드를 짜는 건 오히려 서비스 개발의 병목이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추상화를 신경 쓰면서 짤 수 있다 해도, 실제 프로덕션에 완전히 반영하긴 쉽지 않다.

해야 할 게 너무 많다 보니 코드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기도 어렵고, 외적으로 고민할 게 더 많아진다.

어쩌면 그냥 돌아가는 제품만 만들고 에러 나면 그때 고친다는 마인드로 개발하다 보니, 개인의 성장이 멈추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면서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고, 좋은 건 회사 프로덕션 코드에 조금씩 반영하는 방식을 계속 해왔다.

굉장히 마음에 드는 방식이라 팀원에게도 추천했다.

사이드 프로젝트 얘기로 넘어가자면, 처음엔 사이드 프로젝트로 기획한 “낫투두” — 하지 말아야 할 걸 역으로 적는 기획이 있었는데, 서로 그닥 와닿지 않았다.

조금 더 재미있게 개발하려면 “쓰는 앱을 만들자” 가 굉장히 중요했다. 그래서 평소에 팀원이 많이 쓰는 “투두 메이트”와 유사한 할 일 관리 서비스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아이두"라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아이두"라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이 앱의 기획 의도는 사실 따로 있었다. 1년 정도 진짜 쉬지 않고 팀원 모두 개발만 했다. 퇴근해도 퇴근이 아니고, 집에서 새벽까지 개발하다 잠 못 자고 출근하는 게 반복이었다.

조금씩 모두에게 번아웃이 오던 때라, 서로의 할 일을 올려두고 누군가 지켜보다가 놓치면 가볍게 알림이라도 주는 구조 가 있다면 — 다 같이 리듬을 되찾아 공부하며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한 팀이다. 각자의 성격도, 일하는 방식도, 하루를 움직이는 리듬도 제각각이다.

완전히 같아질 수는 없다. 그렇기에 모두가 조금씩 자신을 내려놓고 서로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설 때, 비로소 마음이 맞춰지는 순간이 만들어진다 고 믿는다.

그게 혼자 하는 개발과 팀으로 하는 개발의 결정적인 차이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더 분명해진다.

그래서 실행 자체는 최대한 가볍게 가져갔다. 일단 쉽게 기획해서 빠르게 유저 반응을 보는 것 이 첫 번째 목표였다.

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만드는 데 힘을 보태면 팀원들의 번아웃 극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서버도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앱도 함께 작업하고, 앱의 성장을 위한 아이디어도 적극적으로 얹었다.

사실 이 앱을 꾸준히 끌고 가는 데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원래 새로운 걸 만드는 것 자체를 무척 좋아한다.

아이디어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 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디어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 더 — 개인적으로는, 적은 인원으로라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거나, 혼자서 하나의 파트를 온전히 맡아 작은 무언가라도 직접 만들어보는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외로 많은 개발자들이 팀 프로젝트는 많이하면서 이런 시도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이유는 단순하다. 회사 일이라는 건 — 새로운 걸 도입하고 싶어도, 현실적인 이유로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개인으로 하는 프로젝트는 놀라울 만큼 자유롭다.

내가 평소에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구조, 책이나 강의에서 배운 내용을 그때그때 곧바로 코드 위에 올려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아, 이건 정말 효과가 좋은데?’ 싶은 게 생기면 — 그대로 회사 프로젝트의 코드로 옮겨 심을 수도 있다.

꼭 사이드 프로젝트가 아니어도 괜찮다. 책, 강의, 스터디에서 공부한 것들을 — 어떤 작은 형태로든 내 손으로 구현해보는 일 자체가, 가장 빠르게 실력을 끌어올리는 길 이라는 걸 최근에 더 실감한다.

실제로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개발자분들 — 당근의 Tony 님, 그리고 인프랩의 이동욱 님 — 도 본인들의 성장 과정을 돌아보며, 개인 프로젝트와 학습한 내용을 실제로 손에 옮기는 방식을 적극 활용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방향이 아주 이상한 건 아니구나.’

개인적으로 나는, 어떤 “소속”이 주는 안정감에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팀이든 동아리든 부트캠프든 회사든 마찬가지다.

개발할 때 “의존성”을 조심하라고들 한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어딘가에 속하는 순간 그곳의 정보와 문화가 기본값이 되어버리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기준이 흐려진다.

그리고 그 안정감에 취한 사이 개인의 자아를 잃어버리고, 성장은 조용히 멈춘다.

오해는 하지 말자. 어디에도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안도감에 매몰되지 말고, 내가 지금 하는 일과 그 방향을 스스로 끊임없이 점검하라는 뜻이다.

결국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

어떤 소속도 나를 나만큼 알지 못하고, 그래서 항상 좋은 답을 주는 것도 아니다.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조직은 개인보다 더 큰 그림을 보지만, 그 그림 속에 내가 있는 건 아니다.
조직은 개인보다 더 큰 그림을 보지만, 그 그림 속에 내가 있는 건 아니다.

조직은 순간순간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내리고, 그 안의 개인은 때로 왜곡된 정보에 휩쓸리기도 한다.

그래서 더더욱,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 자신이어야 한다. 그러니 내 인생은 내가 설계해야 한다.

거기에 더해, 이 앱이 나중에 회사 서비스든 개인 프로젝트든 — 어디에든 가져다 쓸 수 있는 좋은 보일러플레이트 가 되어줄 것 같아서, 지금까지도 재밌게 손을 대고 있다

다행히 반응도 조금씩 따라와줬다. 실제로 구독 결제를 해서 쓰는 유저가 생겼고, 이 글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약 200명 정도가 앱을 꾸준히 활용해주고 있다. 숫자가 조금씩 늘어가는 걸 확인하는 재미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

덕분에 Nest.js 서버 에 대해서도 훨씬 더 깊게 파고들 수 있었다. 운영하는 과정에서 Railway 같은 무료 대안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지만, 이번 기회에 회사 프로젝트에 바로 가져다 쓸 수 있는 경험 을 쌓아두고 싶어서 — 일부러 돈을 내가며 AWS에 배포해 여러 구성을 직접 테스트해봤다.

Transporter를 한번 써보면 좋겠다.
Transporter를 한번 써보면 좋겠다.

프론트엔드 쪽에서도 코드를 깔끔하게 짜는 감이나 Expo 잡기술이 많이 늘었다. 생각보다 훨씬 좋은 프레임워크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꼭 비싼 클라우드로 배포하지 않아도 되더라. 돈 절약이 필요한 우리 회사에서도 충분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최대한 내가 하는 것들을 의미 있게 엮어보려고 한다. 이 앱 덕분에 동아리 교육 자료도 만들었다 — 유저 입장에서 직접 써보고 “나라면 어떻게 개발할 것 같은지” 고민해보게 하는 섹션이다.

"아이두" 분석 섹션
"아이두" 분석 섹션

회사 코드에서도 바로바로 써먹어서 개발 속도를 꽤 올렸다. 특히 회사 학생 서비스를 앱으로 전환할 때 이 사이드 프로젝트의 코드가 거의 그대로 보일러플레이트로 쓰였다. 여러모로 사이드는 굉장히 좋은 것 같다. (다만 생각보다 서버비가 많이 나와서, 그 부분은 고민을 좀 더 해봐야겠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개인 사업자 제작, 통신 판매업 신고, 기획, 디자인, Apple Search Ads 마케팅, RevenueCat 결제 시스템, Redis, BullMQ, AI 활용법, Threads 반말 말투 적응기, Expo 이해까지 — 정말 많은 경험을 압축해서 했다.

다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 앱을 만든 게 팀원한테도 정말 도움이 되는 일이었는지는 한번 진지하게 돌아봐야겠다.

처음에 세웠던 두 가지 목표는 아래와 같다.

  1. 같이 앱을 쓰면서 팀원 모두 더 열심히 인생을 살기
  2. AI로 잃어버린 개발 재미 찾기

이걸 제대로 이뤘는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더 솔직하게는, ‘내가 좋자고 한 이 일이 결국 팀원들에게 일거리만 하나 더 얹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어도 결국 결과가 좋아야 하니까.

그래도 이 경험들이 어떤 형태로든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팀원들에게 언젠가 한 번쯤은 “아, 그때 도움 많이 됐다”로 떠오르는 기억이 되기를 바란다.


개발 동아리

이번에도 개발 동아리 웹 파트를 리드하기로 했다. 사실 이번 기수는 절대 안 하려고 했다. 성격상 뭔가 안 좋은 게 보이면 바로 고쳐야 하는 사람이라, 한 번 맡으면 계속 뭔가를 뜯어고치게 된다. 저번 기수(9기)도 안 하려 했는데 나를 도와주는 웹 파트장 친구인 코튼이 내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같이 했다.

그래도 그 친구가 내가 “워크북과 강의 영상”에만 집중할 수 있게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총괄·부총괄님도 “워크북은 그대로 가고 나중에 질문만 받아주셔도 된다”고 부탁하셔서 시작했는데, 역시나 그냥 넘어가질 못하고 또 개선했다.

다만 이전에 어느 정도 잘 만들어놔서 확실히 투자한 시간은 줄었다.

9기 동아리에 대해서 할 말은 정말 많지만 26년 1분기 회고라 생략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는데, 그래도 워크북에 대해서 다들 좋은 피드백을 많이 주셨다.

9기 웹 파트 워크북 만족도

9기 웹 개발 실력 성장 관련

이번에 새로운 “10기 중앙 웹 파트장” 을 뽑아야 했는데 역시나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내가 워크북을 너무 퀄리티 높게(?) 만들고 질문도 새벽까지 빠르게 받아주다 보니 지원자분들이 부담을 느낀다고들 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나 보다.

그래도 추가 모집 때 한 분이 지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기간은 남았지만 더는 지원이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었고, 디스코드로 얼굴 뵈며 이야기를 1시간 정도 나눴는데 “실력이 당장은 부족하지만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서 성장할 것 같다” 는 생각이 들어 바로 웹 파트장을 권유드렸다.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지금까지 너무 잘해주셔서, 내가 워크북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이 자리를 빌려 “지이”님께 감사 인사를 남긴다! 데모데이 때 얼굴을 살짝 본 것 말고는 따로 뵌 적이 없는데, 나중에 한번 만나서 이야기해도 재밌을 것 같다.

이번 워크북도 안 바꾸려 했지만 결국 바꿨다. 새로 오신 파트장님이 이전 워크북을 직접 해보시면서 “어떤 부분이 힘들었고, 어떤 내용이 더 있으면 좋겠다”고 피드백을 주셔서, 그걸 반영해 조금씩 개선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개발을 시작한 2023년만 하더라도 “AI”가 그렇게 코딩을 잘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서울 정도로 발전했지만.

그때 나는 강의를 정말 많이 들었는데, 강사님이 투두리스트를 혼자 후딱 만드는 걸 보고 “내가 투두도 못 만들면 어떻게 앞으로 개발자를 하지?” 싶어서 진짜 3달 동안 강사님의 개발 강의의 강의 대본과 코드를 암기한 것 같다.

같은 코드를 수없이 쳐보고 손으로도 써보고. 그걸 이제 5기수 동안 30개 학교 웹 파트 약 1,000명 넘게 알려드리면서 반복하다 보니, 남들보다 코드 치는 일에는 꽤 익숙해졌다.

AI에 너무 의존하는 모습
AI에 너무 의존하는 모습

근데 요즘 개발을 처음 공부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AI에 과하게 의존한다. 막히면 고민 없이 바로 AI한테 물어본다. 답변 내용을 이해하고 옮기면 상관없는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AI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게 아닐까 싶고, 지양하라고 항상 말씀드리지만 너무 달달한가 보다.

물론 본인이 절제할 수 있다면, AI를 교육용으로 활용하는 것이 정말 효율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활용하고 있다. 근데, 대부분은 그냥 복사 붙여넣기로만 활용한다.

근데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지금 처음 개발한다면 나도 똑같을 것 같다. 어쩌면 앞으로 AI가 더 발전할 텐데, 지금 동아리원 분들이 하는 방향이 더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꼰대”가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조금씩 AI 꼰대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AI 꼰대!?
AI 꼰대!?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신하는 건, 중요한 건 결국 서비스를 설계하거나 유저 입장에서 고민해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0 to 100으로 스타트업 서비스를 만들고 어디 가서 “뭔가 해봤다”고 적을 만한 성과를 이제서야 내본 입장에서 더더욱 그렇게 느낀다.

그래서 내가 사이드 프로젝트로 만들고 있는 “아이두” 를 직접 분석하게 하는 섹션을 이번 워크북에 넣었다. 앱 홍보 목적도 살짝 있긴 했지만, 진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중앙 웹 파트장 지이님께서 먼저 “이 섹션 정말 좋다, 배우는 게 실제 서비스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보는 니즈를 채워줬다” 고 해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매주 피드백을 받고 있는데 대부분 좋아해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로그인 하나를 구현하더라도 내부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디까지 클라이언트가 하고 어디부터 서버가 하는지 — 지금은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처음 개발할 땐 정말 어려웠다.

동아리에서 처음 프로덕트 만들 땐 “이거 서버가 만들어요, 클라가 만들어요?” 같은 고민을 정말 많이 했고, 답을 얻으려고 링크드인이든 어디든 선배 개발자분들께 엄청 물어봤다. 그런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여드리고 싶었다.

그냥 만들고 봤던 유튜브 강의를 약 70개를 만들 줄 몰랐다
그냥 만들고 봤던 유튜브 강의를 약 70개를 만들 줄 몰랐다

벌써 10기도 절반이 왔다. 아마 이번이 진짜 마지막 기수가 아닐까 싶다. 그 사이 유튜브 구독자 411명도 달성했고, 나한테 배우신 분들 중 좋은 곳에 취업하신 분들, 인턴 합격하고 인사 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나름의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결국 해낸 건 그분들 본인이지만, 그 길 어딘가에 10% 정도는 내가 기여한 것 같다.

얼마 전 다른 분의 25년도 회고글에서 “인생에서 도움 많이 준 사람” 중 한 명으로 내 이름이 있는 걸 보고, 내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았다.

정말 철없던 어릴 적을 생각하면, 난 도움을 많이 받는 쪽이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만 봐도 많이 성장했다고 느낀다. 비전공자로 3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며 개발해왔는데 — 다행이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이번 10기 동아리 목표도 언제나처럼 단순하다.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고, 동아리원분들이 편하게 톡방을 두드릴 수 있게 하자. 그거면 됐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동아리 부원이 있다면, 꼭 한 마디만 전하고 싶다.
방향성 잘 잡고 늘 열심히.


방향성 잘 잡고 늘 열심히

나도 그랬다. 비전공자로 시작해서, 매일 밤 무식하게 같은 코드를 수없이 쳐보고, 링크드인에서 선배 개발자분들께 실례를 무릅쓰고 질문을 보내며 공부했다. 강의 질문도 정말 열심히 활용했다. 답장이 올 때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 시절의 나는 노력은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방향성으로 노력을 해야 하는지 길이 안 보이는 게 가장 무서웠다.

즐기면서 꾸준히 하다 보면 결과는 따라온다. 본인을 믿고, 너무 지칠 땐 좀 쉬어가고, 몰입할 때는 다 잊고 몰입하시면 좋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지금의 내가 부러움의 대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 나에게도 여전히 부러운 사람들이 있고, 지금도 매일 미래를 고민하고 걱정하며 개발하고 있다.

도달했다고 끝나는 지점은 없는 것 같다. 조금 더 멀리 보이는 자리에 왔을 뿐, 고민의 무게가 줄어든 건 아니더라. 그러니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만으로 본인을 판단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나도 정말 많이 방황했다. 그 방황의 과정에서 손을 내밀어 주셨던 분들이, 이 글을 적는 지금도 계속 떠오른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공통적으로 들은 질문이 하나 있다. 돈도 안 주는데 왜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냐는 것.

나는 최대한 내가 하는 모든 활동의 연관성을 찾으려고 하는 편이다. 뭔가를 열심히 하다 보면 손해 보는 일은 절대 없다고 믿는다. 이 활동을 하면서 나도 부족한 부분을 많이 배웠고, 오히려 적어도 나한테 배우시는 분들보다는 잘 알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더 열심히 살아올 수 있었다.

배우는 입장으로 너무 오래 있지는 않았으면 한다. 한번은 누군가를 알려주는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훨씬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엄청나게 빨리 성장하는 분들을 옆에서 보면 배울 점이 정말 많다고 느끼고, 실제로 좋은 회사에 가신 분들도 많아서 그런 분들과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자산이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부정적인 말도 많이 했지만, 돌아보면 결국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활동이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걸 겁낸다. 그러다 보면 결국 혼자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그 손해는 고스란히 본인에게 돌아온다.

내가 만든 워크북과 강의 영상이, 그때의 나처럼 길을 헤매고 있을 누군가의 시간을 아주 조금이라도 줄여드릴 수 있다면 — 그것만으로도 지난 3년은 충분히 값졌다고 생각한다.

올해의 탈출상
올해의 탈출상

그리고 벌써, 약 3년 동안 중앙 웹 파트장을 했다. 이번엔 진짜, 제대로 끝맺음을 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내 개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개발 동아리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다. 지금까지도 연락을 이어가는 고마운 사람,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자극을 준 사람, 진짜 대단하다고 느낀 사람, 본받고 싶은 사람 — 이들 덕분에 슬럼프도 여러 번 넘길 수 있었다.

동아리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 나누지 못했을 사람들도 꽤 많다.

보통 한국에서는 개발자가 “프론트엔드 / 백엔드 / 데브옵스”로 나뉘지만, 나 같은 초기 스타트업 개발자는 그냥 다 해야 한다. 혼자 풀기 어려운 문제는 동아리에서 알게 된 분들께 여쭤보며 풀어갔고, 조언을 부탁드리면 다들 흔쾌히 도와주셨다. 정말 감사한 인연이 많다.

그리고 3년간 웹 파트장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경험 그 자체였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는 당연하지” 하고 넘겼을 개념도, 남에게 설명하기 위해 깊게 파고 다시 정리하다 보니 오히려 내 기초가 더 단단해졌다. 누군가를 위해 만들기 시작한 워크북이, 결국 나를 위한 워크북이 된 셈이다.

이렇게 좋은 경험이었음에도 동아리 활동을 마무리하려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휴식의 목적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많은 분들이 활발하게 질문을 해주셨는데,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질문의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제는 내가 없어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이 자리를 너무 오래 차지하고 있어서, 새로 올 수 있는 더 좋은 사람들의 기회를 막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직에 속해 있는 내가 아닌, 그냥 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고 싶다.
조직에 속해 있는 내가 아닌, 그냥 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고 싶다.

가장 큰 이유는, 너무 오래 한자리에 있다 보니 스스로 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 조직은 안정감을 주지만, 개인을 끝까지 책임져 주지는 않는다.

돌이켜보면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과정 자체를 정말 좋아했다. 알려주면서 나도 같이 배우고, 질문을 받으면 아는 것 이상을 꺼내서 나누고 싶어 하는 것 — 그게 내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개편하지 않아도 되는 워크북을 일부러 다시 쓰고, 강의 영상까지 찍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게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질문이 줄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이상한 생각이 대신 채웠다.
“이걸 돈 받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느 순간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을 내뱉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 순간 멈칫했다.

내 행동에 가격을 매기기 시작하면, 처음엔 열심히 하겠지만 결국엔 “딱 받은 만큼만” 움직이게 될 것 같았다.

더 알려줄 수 있는데, 더 새로운 걸 나눌 수 있는데, 어느 순간 귀찮다는 이유로 덜어내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작년 말부터 강의 영상을 만들려다 결국 손대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다려주셨던 분들께는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린다.

그건 내가 싫어하던 모습이었고, 결국 듣는 사람을 속이는 일이기도 했다.
재미로 하던 일이 의무가 되고, 의무가 거래가 되는 순간, 내가 가장 자신할 수 있는 내 강점이 사라진다.

그 안정감에 기대어 계속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강점도 잃고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었는지조차 흐려질 것 같았다.

나는 재미가 있어야 더 성장하는 타입이다.

깊게 파고들고, 새로 배우고, 어설프게라도 뭔가를 만들어보는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워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단체 안에서 수동적으로 변화는 내 모습을 보며,
그 재미를 조금씩 잃어버린 것 같다.

이제는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나의 강점을 살린 활동들을 해보고싶다.


스터디

동아리 마무리 행사인 데모데이에서 많은 분들이 매 기수마다 공통적으로 주신 질문이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요?” 였다. 솔직히 처음 개발하는 분들에게 내 워크북과 강의 영상은 정말 어렵다. 내가 처음 개발했을 때 1년 넘게 공부하고 여러 강의를 들으며 체화한 내용을 담았는데, 이걸 3개월 안에 끝내라는 건 욕심이다. 꾸준히 두고 보라는 의미로 만들었다.

근데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 게, 이것만 하면 취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가능할 수 있지만, 더 좋은 회사를 생각한다면 한없이 부족하다. 이 워크북은 데모데이 프로젝트를 쉽고 빠르게 만드는 길을 제공하는 거지, 라이브러리에 대한 깊은 이해나 좋은 코드와는 거리가 있다.

올해의 탈출상
올해의 탈출상

데모데이마다 최대한 참여하며 동아리원분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다음 공부 방식”에 대한 니즈가 분명히 느껴졌다. 그래서 곧바로 스터디 참여 폼을 열었는데 약 40명이 지원해주셨다. 날 믿고 지원해주신 분들이 대다수라 감사했다. 원래는 “첫 기수”를 좀 더 심화된 주제로 운영하고 싶었는데, 기대 이상의 참여라 약 10개 팀으로 관심 주제에 맞게 쪼개서 진행 중이다. 나는 스터디 관리만 도와주고, 잘 굴러가는지 확인만 하고 있다.

사실 이걸 벌인 데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내가 판을 깔면 누군가는 분명 참여할 걸 알고 있었고, 그동안 서버 공부에 니즈가 있던 친구가 이참에 조금이라도 배우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첫 기수”를 정말 잘 운영하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개발 실력이 면접에서 다 드러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막상 라이브 코딩이나 화이트보드 면접을 보면 당연히 떨리고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이런 경험을 면접 여러 번 보는 것 외에 쌓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스터디에서 나의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힘들 수 있어도 자기 점검에 정말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대학교에서 웹 파트 친구들한테 약 2년간 라이브 코딩을 준비해서 잘되든 안 되든 계속 했는데, 준비 과정은 오래 걸리고 스트레스였지만 돌아보면 면접 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이런 경험을 스터디를 잘 운영하여 누군가에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이번 기수를 잘 굴리는 게 중요했다.

그래도 첫 주 만족도로만 본다면, 다행히 꽤 괜찮게 진행되고 있다.

나쁘지 않은 스터디 만족도
나쁘지 않은 스터디 만족도

10주차 중 절반쯤 지났고 한 팀이 낙오하긴 했지만, 추가 낙오 없이 마무리되면 좋겠다. 모두를 만족시키긴 어렵겠지만 대부분 만족한 스터디였기를.

다음 기수에는 좀 더 잘 운영하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AI 놀랍다.

“너 개발자 고점에 물린 거 아니냐” — 요즘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다.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면, 내가 개발을 시작하던 2023년은 코로나 시기 개발자 채용이 가장 많이 풀렸던 마지막 해였다. 그래서 가끔 “너 고점에 물렸다” 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근데 그 말이 별로 와닿지 않는다. 나는 개발자를 많이 뽑아서 개발을 시작한 사람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했고, 안 좋아하는 일을 억지로 몇 번 해보고 나서 결국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맞다는 결론에 닿았을 뿐이다.

요즘 내 관심사를 크게 두 축으로 나눌 수 있다면, 그중 한 자리를 차지하는 건 단연 “AI” 다. 돌이켜보면 비전공자임에도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한 게 정말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대의 변화 한복판에, 그것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할 수 있는 직업이라서 그렇다.

물론 요즘 대중매체엔 “개발자는 사라진다” 류의 공격적인 기사가 쏟아진다. 해외 빅테크든 국내 회사든 신입 개발자 채용은 눈에 띄게 줄었고, 해고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전부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AI를 매일같이 가까이에서 쓰고 있는 입장에서 감히 한 가지만 말하자면, 개발자는 화이트칼라 직군 중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을 직업 중 하나라고 본다. 개발자를 단순히 “코드 치는 사람” 으로만 정의한다면 빠르게 대체될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옆에서 봐온 개발자들은 전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기획자, 디자이너, 마케터, CS, 대표 — 수많은 직군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그 대화를 실제 프로덕트의 가치로 번역해내는 사람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개발자다.

언어의 진화, 그리고 통역

조금 더 긴 시야로 보면, 지금 일어나는 변화는 사실 과거의 개발자분들이 이미 여러 번 겪어낸 일의 연장선이다. 초기의 개발자들은 0과 1로 직접 기계와 대화했다. 그 뒤에 어셈블리어가 나왔고, C가 나왔고, 우리가 지금 쓰는 JavaScript, Python, Java 같은 고수준 언어가 나왔다.

언어의 역사
언어의 역사

언어가 한 단계씩 사람 쪽으로 추상화될 때마다, 분명 그 시점의 누군가는 “이제 개발자가 필요 없어진다” 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매번 결론은 같았다. 추상화가 올라갈수록, 개발자는 더 높은 층위의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이 됐다.

AI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형태다. 이제는 자연어 로 기계에게 일을 시킬 수 있다. 지금까지의 언어 진화 중 가장 큰 도약이긴 하지만, 방향 자체는 똑같다.

그래서 나는 이 흐름을 통역에 빗대어 생각한다. 요즘 AI가 번역을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해당 언어를 쓰는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상하게 번역되는 경우가 있다.

아직까지는, 그 수준까지는 완벽하게 번역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통역가는 번역된 문장이 어색하거나 의미가 어긋나면, 결국 원문으로 돌아가서 직접 확인한다. 원문을 읽을 줄 모르거나 사회/문화적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번역을 그대로 믿게 된다.

개발자가 필요했으면 좋겠어요
개발자가 필요했으면 좋겠어요

결국 AI 시대의 개발자도 같은 자리에 있다. AI가 내놓은 코드가 이상할 때, 그 코드를 직접 읽어내고 방향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사람 — 그게 앞으로도 필요한 개발자다. AI는 더 많은 코드를 써줄 것이다. 다만 그 코드가 제대로 된 것인지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실제로 요즘 해외 회사들 사례를 보면 이 지점에 대해 의견이 크게 갈린다. “코드가 넘쳐나니 리뷰도 어떻게든 AI로 자동화하자” 는 쪽과, “계속 장애가 터지니 최종 검토자는 반드시 인간이어야 한다” 는 쪽이 공존한다. 정답은 아직 없다. 다만 이 논쟁 자체가 AI가 개발자를 대체한다는 단순한 서사가 현실에선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설, 그리고 의존

최근에 더 체감하는 건, AI가 만든 코드에서 역설적으로 보안 취약점이 엄청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아무리 꼼꼼히 읽어도 놓쳤을 법한 허점들을, 또 다른 AI가 몇 초 만에 찾아낸다. 그리고 그 문제를 다시 AI가 해결해주기도 한다. AI가 위협이자 해결사로 동시에 작동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AI가 발전할수록 개발자가 할 일이 없어진다” 는 전망에 오히려 반대쪽으로 무게를 싣고 있다. 가장 강력한 모델이 만들어질수록, 그 모델이 만든 결과물을 책임지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더 필요해진다.

실제로 최상위 AI 모델들이 곧바로 일반 대중에게 전면 공개되기보다는 통제된 환경에서 먼저 배포되는 흐름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 기술이 강해질수록,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역량이 더 중요해지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AI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 AI는 서버 상태와 전력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다. 언젠가는 해결될 문제이겠지만, 머지 않아 AI 성능보다 운영 비용과 토큰 비용이 더 큰 과제가 될 거라고 본다.

토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오히려 개발자 채용을 늘리는 회사가 나오거나,
반대로 인력을 대폭 줄인 뒤 엔터프라이즈 도입 직전 단계에서 멈춰 서는 회사가 생기거나 —
그런 순간이 한 번쯤은 올 것 같다. (물론 이 또한 언젠가는 해결되겠지만.)

개발자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클로드 먹통 되면 퇴근하자” 라는 말이 돌 정도다. 우리가 개발할 때 어떤 것에 강하게 의존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AI와의 관계도 비슷하다.

정전이 된다면? 퇴근해야지.

언제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니, 꼭 필요한 결합이 아니라면 그 강결합을 떨쳐낼 수 있는 기본기를 놓아서는 안 된다.

돌고 돌아, 기본기

결국 돌고 돌아 이야기는 기본기로 귀결된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회사가 쓰는 좋은 기술” 에는 관심이 많다. 그러나 정작 그 회사가 어떤 문제를 겪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방식에 도달했는지 에는 의외로 관심이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개발자에게는, 그 과정을 직접 거칠 기회조차 잘 주어지지 않는다.

나 역시 한때는 기술의 등장 배경보다, 기술 그 자체에 집착하던 사람이었다.

이건 나뿐 아니라 우리 팀도 최근 비슷하게 안고 있는 고민이라, 조금 더 나은 방향을 찾아보고 싶어 얼마 전 커피챗을 한 번 부탁드렸다. 그 자리에서,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오신 분, 초기 창업을 거쳐 지금은 좋은 회사에서 일하고 계신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기술에는 완벽함이 없어요. 그런데 많은 경우, 사람들은 현재 자신의 수준을 실제보다 높아 보이게 포장하려고 하죠. 좋은 회사는 ‘왜 더 좋은 기술을 쓰지 않았냐’고 묻지 않아요. 지금의 문제를 풀기 위해 왜 이 기술과 아키텍처를 선택했는지, 더 나은 방법은 없을지 고민해봤는지, 고민해봤다면 왜 적용하지 못했는지 —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을 훨씬 더 많이 요구합니다.”

“대부분의 개발자는 이미 세팅된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해요. 그래서 0에서 100까지 가는 과정을 경험해볼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자산 위에서 개발하다 보니, 오히려 깊게 고민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거죠.”

“지금 본인의 위치는 어찌 보면 정말 큰 강점이에요. 0에서 100으로 한 번에 점프하려 하지 말고 — 0에서 10, 10에서 20, 20에서 30, 이렇게 단계별로 실험하고, 기록하고, 정리해서 본인만의 스토리로 만들어보세요. 이런 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이야기거든요. 대부분의 회사는 시작하자마자 망하는데, 계속 투자받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가장 좋은 조건입니다.”

“남들 다 쓰는 이야기는 좋은 포트폴리오도, 좋은 이력서도 되지 못해요. 특히 요즘처럼 적게 뽑는 시장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아예 듣지 말라는 건 아니에요. 다만, 너무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담담하게, 그동안 해온 걸 돌아보면서 계속 가면 됩니다.”

같은 자리를 이미 지나오신 분의 말이라 무게가 달랐다.

예전의 나는 “좋은 회사들은 어떻게 개발하고 있을까” 가 늘 궁금했고, 그 갈증을 여러 활동으로 채워왔다. 그런데 이 조언을 듣고 난 뒤로는, 시선 자체가 바뀌었다.

지금 내 상황을 ‘결핍’으로 볼 것인지, ‘남들이 못 해본 0-to-100의 특권’으로 볼 것인지
이건 결국 내가 정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기본기였다.

그 이후로 동아리 워크북을 만들 때도, 라이브러리를 직접 유사하게 구현해보는 섹션을 이전보다 의식적으로 더 많이 넣기 시작했다. “왜 이 라이브러리가 필요한가” 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도구가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AI 시대일수록, 오히려 이 감각이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새로운 학습 습관도 하나 생겼다. 새로운 기술을 공부할 때 기술 자체를 파고들기 전에, 먼저 AI에게 세 가지를 묻는다.

  • 첫째, 이 기술은 애초에 왜 등장했을까.
  • 둘째, 그 전까지는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왔을까.
  • 셋째, 기존 방식으로는 왜 더 이상 충분하지 않았기에, 이 도구가 새로 필요해진 걸까.

이 세 질문을 거치고 나면, 같은 기술을 공부해도 머릿속에 남는 밀도가 확실히 다르다. 단순히 “이 라이브러리는 이런 기능을 한다” 를 외우는 게 아니라, 그 도구가 어떤 문제의 답으로 태어났는지 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한 기술은, 나중에 더 나은 도구가 등장했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옮겨 갈 수 있다.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결국 이게, 내가 쥐고 가는 가장 단단한 기본기인 것 같다.

물론 쉽지 않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한 시니어 개발자 분의 이야기를 듣고, 따로 기록해 둔 적이 있다.

“많은 개발자들이 문제를 해결할 때, 꼭 ‘개발’이라는 도구로만 접근하려 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문제는, 개발이 아닌 방법으로도 충분히 풀 수 있어요. 오히려 저는 그런 유연한 시야를 가진 지원자를 더 선호합니다.”

별말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 뒤로 나도 어떤 문제를 마주할 때면, “이걸 꼭 개발로 풀어야 할까” 부터 먼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스프레드시트 한 장으로 해결되는 일을 굳이 관리자 페이지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간단한 운영 프로세스로 끝날 일을 괜히 코드로 떠안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있는 환경은 이 감각을 체득하기에 꽤 좋은 자리인 것 같다. 문제투성이인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오히려 개발이 아닌 방법으로 문제를 푸는 감각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엔, 자기만의 커리큘럼

다만 한 가지는 짚고 가고 싶다. 위에 적은 조언을 듣고 내 시선이 바뀌었다고 썼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조언을 그대로 내 것으로 가져오진 않는다는 말이다.

가끔 누군가의 조언을 바로 자기 삶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 나도 과거에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을 억지로 걸어가다 넘어진 경험이 있어서, 요즘은 조언을 들을 때도 최대한 필터링해서 듣는 편이다.

상대방은 나를 잘 모르기에 항상 좋은 조언만 할 수 없다. 맞지 않는 조언을 할 수 있다.
상대방은 나를 잘 모르기에 항상 좋은 조언만 할 수 없다. 맞지 않는 조언을 할 수 있다.

조언을 받지 말자는 말이 절대 아니다. 다만 그 조언 중에도 나에게 맞는 방식이 있고, 맞지 않는 방식이 있다.

조언을 해주는 사람은 본인에게 그 방식이 잘 통했기 때문에 권하는 것이다. 근데 정작 듣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방식일 수 있다.

예전의 나는 누군가의 말이 좋다고 느끼면, 기존의 나와 내 강점을 통째로 갈아엎는 방식으로 바꾸려 했다.

결과는 늘 좋지 않았다. 그 사람의 방식도 내 것으로 완전히 소화 못 하고, 동시에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강점마저 흐려졌다.

축구선수도 감독에 따라서, 더 빛날 수 있고, 어떤 감독 밑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좋은 축구 감독은, 선수의 장점을 더 살려줄 수 있는 감독이지, 자신의 전술에 선수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감독이 아니다.

결국 곰곰이 생각해보면 AI도 누군가의 조언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 AI의 도움이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다.

뭐든 과하게 의존하면 본인의 장점마저 잃고, 본인의 위치가 애매해진다. 아직까지는 AI를 내 강점을 더 살려줄 수 있는 조언자의 자리에 두는 편이 좋아 보인다.

이건 최근에 동아리를 운영하며 워크북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늘 실감한다. 같은 워크북인데도 어떤 분에게는 “정말 좋았다” 는 반응이 오고, 어떤 분에게는 “너무 빨랐다” 는 말이 오고, 또 어떤 분에게는 “내용이 넘쳐서 더 배우고 싶다” 는 의견이 온다.

누군가를 특정해서 꼭 맞는 무언가를 알려준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결국 본인 인생의 커리큘럼은 본인이 조정하는 수밖에 없다.

좋은 개발자는 코드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코드 바깥에서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그러니 개발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겁내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결국 AI를 가장 먼저 만나는 것도 개발자이고, 그 변화에 가장 빠르게 올라타는 것도 개발자다.

겁낼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써보고, 한 번이라도 더 만들어보는 쪽이 지금 이 시점에 가장 현명한 자세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AI도 결국,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그 데이터는 다름 아닌 사람들의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겪고, 쓰고, 남긴 시간의 집합이다.

그렇게 보면 지금 우리가 경외하는 AI의 모든 대답은, 결국 누군가가 살아낸 과거의 평균치인 셈이다.

그러니 AI의 조언이든 누군가의 조언이든, 그 안에 본인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는 순간 정작 본인이 지나온 과거의 아름다움까지 함께 지워진다.

좋지 않았던 일도 분명 있겠지만, 그 안엔 좋은 순간들도 함께 있다. 두 가지가 얽혀서 지금의 내가 된 건데, 그걸 외부 기준에 맞춰 깎아내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을 스스로 대체 가능한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다.

"F"는 중요하다.
"F"는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AI가 끝내 인간을 넘어설 수 없는 이유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와의 소중한 시간, 텍스트로는 옮겨지지 않는 향과 냄새, 피부로 스치는 바람 같은 오감의 순간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던 날의 무게, 이유 없이 울컥했던 기억, AI는 그것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실제로 겪어낼 수는 없다.

겪어내지 않은 사람은, 겪어낸 사람을 끝내 이길 수 없다.

그러니 누군가의 조언을 참고는 하되, 무엇보다 본인이 지나온 시간을 스스로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그 시간이야말로, 어떤 모델도 학습하지 못한 당신만의 데이터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당신 한 명뿐이다.


세상이 깜깜해졌다.

이번 1분기에 블랙아웃이 한 번 왔다. 운동도 꾸준히 하고 스트레스 관리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잘 안 되었나 보다. 새벽까지 작업하다 밤을 샌 다음 날이었다.

집에서 일하면 그냥 퍼져버릴 것 같아서 카페로 나갔는데, 커피를 시키고 나오다가 계단에서 몇 초간 의식을 잃고 굴러 떨어졌다. 어찌저찌 그래도 핑계는 잘 댄 것 같다.

대충 이런 느낌
대충 이런 느낌

이 와중에 다친 부위가 손이 아닌 허리와 발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웃프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덕분에 러닝은 잠시 쉬고 근력 운동을 많이 했다.

올해 초에는 그래도 개발하는 것만큼은 작년보다 훨씬 여유가 있었다. 사실 이전이 말이 안 됐지. 근데 개발 외적으로 신경 쓸 게 많아지다 보니 정작 나를 돌아볼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개발 쪽 일이 또 다시 많아지긴 했다.)

무엇이 제일 많이 신경 쓰였는지, 한번 담담하게 적어보고자 한다.

표리부동(表裏不同) — 겉과 속이 다름

내가 그동안 해온 것을 누가 갑자기 부정하듯 말하고 무시하는 것이 제일 기분이 안 좋았다.
내가 그 감정을 무시하면 되는 일인데, 무시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좋았거나 고마웠던 기억을 빠르게 잊는다. 밤새가며 뭔가 만들어냈을 때는 축하해주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그 순간을 잊는다.

“고생 많으셨어요” 라고 말하던 사람이 나중에 전혀 다른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가끔은 어이가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특정 사람의 이야기들을 조금씩 꼬아서 생각하거나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여 선을 긋는 경향이 강해졌다.

비슷한 결에서, “회사에서 주인이 되어야 한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별로다.
“주인 의식”을 갖지 말자는 게 아니라, 강요가 아닌 저절로 갖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이닉스 성과급처럼 한 만큼 정확히 보상한다면, 열심히 안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회사에서 걸러져야지. 너무 강요하는 방식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회사 일을 대충 하자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회사 성장과 개인 성장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회사가 잘돼야 개인이 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와 역량 최대치도 커진다. 그래서 시간 날 때 짬짬이, 쉴 때도 계속하려고 한다.

회사는 성취에 만족할 만한 보상을 주면 되고, 만족하면 남아서 회사와 개인의 성장을 같이 가져가는 거고, 아니라면 이별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당연한 수순이다.

당연히 쉽지 않다는 것도 이해한다. 회사는 싸게 쓰고 싶고, 직원은 편하게 많이 벌고 싶다. 결국 돈 주는 회사가 갑이 될 수밖에 없고, 대부분은 직원이니 맞춰가야 한다.

반면 최고의 인재는 어떻게든 모셔가려고 애를 쓴다. 그러니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본인의 능력을 잘 키워야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한 가지 더. 지키지 못할 보상은, 동기부여 차원에서라도 꺼내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동기부여의 역설
동기부여의 역설

일을 해내면 이만큼 주겠다, 성과가 나오면 이렇게 보상하겠다, 이걸 들으면 어디론가 취업이 된다. 이런 말이 쉽게 나왔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를 간혹 보고 듣는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말 한마디에 한동안 바라보는 방향이 바뀐다.

없었던 기대가 생기고, 그 기대에 맞춰 시간과 에너지를 배분하게 된다. 그런데 그 보상이 결국 오지 않으면, 사라지는 건 단지 보상 한 번이 아니다. 그 뒤에 회사가 건네는 모든 약속의 무게도 함께 가벼워진다.

우리는 보통 “회사에 대한 구성원의 신뢰”만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 반대 방향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느낀다.

회사가 구성원에게 건넨 말을, 회사 스스로 얼마나 지켜내는가. 이 부분이 흔들리면, 아무리 좋은 비전이나 슬로건도 한동안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와신상담(臥薪嘗膽) — 섶에 눕고 쓸개를 맛보다

개인적으로 “무시”에 트라우마가 있어서 상당히 신경이 쓰인다. 군대 가기 전쯤, 내가 능력이 안 되면 그동안의 관계는 다 의미 없이 떠나버린다는 걸 너무 빨리 깨달았다. 살아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려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괜한 복수심으로 “그 사람보다 성공해야지” 라는 마음 하나로 버텼다. 심지어 그 사람의 직업을 따라가 보겠다고 회계사 공부까지 시작했는데,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도망쳤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그 이후엔 유학을 가려고 중국어를 2년간 공부했다. 물론 코로나로 무산되었지만.

늦게 간 군대에서는 조금 덜 민감해지나 싶었다.
근데 전역 후 복학하자마자 그 복수심이 다시 활활 타오르더라. 그래서 군 전역 이후부턴 “관계” 맺는 것 자체를 피했다.

다가오면 도망가는 부끄러운 짓도 많이 했다.
좋은 감정으로 시간을 투자해도 결국 0에 수렴할 거라면, 그 시간에 내 능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지 않냐는 굉장히 이기적인 생각을 가졌다.

그래도 개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더 많이 만나는 환경에 놓였고, 고맙고 좋은 인연도 많이 생겼다.

물론 필요한 것만 얻고 0으로 수렴된 관계도 있어서 ‘결국 이렇게 되나’ 싶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항상 갖고 있다.

특히 이번 분기에 진지하게 고민한 부분은 내가 무언가 말했을 때, 출신이 더 좋은 회사였다면 내 말에 좀 더 설득력이 있었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출신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던 기회도 있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고, 개인적인 목표와 지금 하는 경험들이 일생에 두 번은 오지 않을 기회이며, 실패해도 지금 나이대에 실패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여 합류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많이 찾아보고 의견을 구해가며 꺼낸 말이었는데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같은 이야기를 출신이 다른 사람이 꺼냈을 땐 바로 수용되는 순간이 유독 올해 많았다.

화법이나 설득력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최근 1분기 동안 유독 무시당한다 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물론 상대방은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을 수도 있다. 그저 장난처럼 웃어넘긴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순간들이 하나둘 쌓이다 보니, 어느새 나에게는 꽤 깊은 트라우마 처럼 남아버렸다.
어느 순간부터는 표정 관리마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돌아보게 됐다. 나는, 내가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있는지.

나는 함께 잘 성장하려면, 결국 모두가 잘 성장해야 한다 고 믿는다.
상대를 경쟁자로 보고 정보를 혼자 쥐고 있는 건, 장기적으로 누구에게도 좋지 않다.

특히 나에게 큰 도움을 주셨던 분들께는, 가능한 한 돌려드리려 하는 편이다.
좋은 기회를 추천해하거나,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거나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하려 한다.

보통은 그러면 더 좋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행위가 오히려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쾌락은 더 큰 쾌락으로 덮인다.
쾌락은 더 큰 쾌락으로 덮인다.

“쾌락은 쾌락으로 덮인다” 고 생각한다. 나와 있었을 때의 관계가 아무리 좋았더라도, 더 큰 쾌락을 맛보는 순간 그 전의 쾌락은 그저 평범함이 되어 묻혀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방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계속 더 큰 쾌락을 맛보게 해주는 게 맞는데, 그럴수록 과거의 나는 점점 흐려진다.

관계를 다루는 나의 미숙함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 쉽게 잊혀져 버리는 것 같아서, 이번 분기에는 고민도 많아지고 신경도 많이 쓴 것 같다.

내가 해온 것들을 누군가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
우물 안 개구리

그래서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지금 자리에서 꾸준히 증명해내는 것, 그리고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나를 내보내는 것. 두 가지가 사실은 한 이야기다. 더 많은 상황에서 직접 부딪혀봐야, 그제야 나라는 사람이 진짜 어느 정도의 자리에 있는지 스스로에게도 보이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가장 빠른 방법은 “이직” 이다. 실제로 기회는 여러 번 있었고, 그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아는 회사도 있었다. 그럼에도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했다.

지금 회사에서 내가 하고 있는 건 0 to 100을 직접 만들어가며 투자까지 받아내는, 그 나이대에 아무나 쉽게 해볼 수 없는 경험 이다. 돌이켜보면 여기까지 오기 위해 포기해온 것이 적지 않았고, 이제 막 결과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시점에 지금 놓아버리기에는 아쉬움이 훨씬 크게 남는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내 삶을 돌아보면, 나는 늘 내 선택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온 사람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꽤 선호하는 편이다.

주위에서 내 선택을 이상하게 바라본 적도 참 많았다. 그러나 지나온 시간 동안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여러 번 걸어봤고, 뒤돌아보면 그 선택들은 대부분 좋은 결과였다.

지금 이 선택 역시, 내가 그리는 미래에 가장 가까이 가기 위해 내릴 수 있었던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물론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고민
고민

특히 관계라는 건,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모두를 동시에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누군가는 서운해하고, 누군가는 떠나고, 또 누군가는 의외의 순간에 내 곁에 남는다. 이걸 이제는 꽤 많은 사람들을 통해, 꽤 여러 번 겪어봤다.

스쳐 지나가는 관계에서 오는 사소한 무시쯤은, 이제 꽤 담담하게 흘려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문제는, 서로 함께 오래 공을 들여왔다고 믿었던 사람들 이었다.

나만의 착각일 수 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서 건네지는 무시는 같은 무게의 말이어도 훨씬 더 깊은 자리에 박혀 남았다.

그 감정이 조금씩 쌓여가는 동안,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가 유독 이번 1분기의 고민이었다. 누구에게 선뜻 꺼내기도 어렵고, 혼자 쏟아낸다고 정리되는 종류의 감정도 아니었다. 결국 그 고민의 무게를 혼자 떠안게 됐고, 그 무게가 이번 분기 전체를 유독 무겁게 만들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장면이 더 깊은 상처로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처음엔 그냥 무뎌지면 그만이라고 여겼는데, 막상 같은 결의 일이 다시 찾아오면 전보다 더 오래 마음에 걸리고, 상처의 결이 한 겹씩 더 두꺼워진다.

겉으로는 같은 장면처럼 보여도, 사실은 단 한 번도 같은 장면인 적이 없다. 매번 다른 얼굴로, 다른 말로, 다른 무게로 다가오기에 매번, 새롭게 아프다.

왜 인간은 초능력이 없을까
왜 인간은 초능력이 없을까

가끔은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내가 나에게 갖고 있는 이미지와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바라봐주고 있는지, 단 한 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면 덜 고통스러웠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 그 간극이 얼마나 될지, 문득 너무 궁금해지는 순간이 많았다.

이게, 이번 1분기에 내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고민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 같은 결의 장면을 또 마주하더라도, 예전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를 바란다.

자승자박(自繩自縛) - 제 줄로 제 몸을 묶다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돌아보면, 나는 누군가에게 부탁을 잘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웬만해선 내가 다 떠안는다.

이런 성향이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습관인 것 같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던 영향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학원을 알아보는 일, 과외 선생님을 구하는 일, 전학 절차, 대학 입시 준비 등, 이런 것들을 누구에게 묻기보다는 대개 혼자 찾아보고 혼자 결정해왔다.

한 번은, 할머니가 크게 편찮으셔서 엄마가 오랫동안 1인실에 함께 계셔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사이 집에는 거의 혼자였는데, 약 1년 정도 학교를 다니고 시험을 준비하면서 — 장도 보고, 요리도 하고, 반찬을 만들어 병원에 가져다드리고 하는 일들이 나의 하루가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를 지나면서 “내 앞의 일은 내가 해내야 한다” 는 감각이 한 번 더 몸에 깊게 새겨졌던 것 같다.

동시에, 그전까지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상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손에서 조용히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실감했다.

당시엔 그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는 그 부분이 가장 잘못된 것 같고 최대한 감사함을 많이 표현할려고 한다.

철이 들었다.
철이 들었다.

이 시기를 지나오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의 나는 철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완전히 정반대로 바뀐 건 고등학교 전학 이후였다.

멀리 학교를 옮기면서 그동안 가까웠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그 무렵부터 성격 자체가 정반대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봐도, 내가 제일 철이 많이 들었던 건 그 전학 이후의 몇 년인 것 같다.

군대에서도 결국 비슷했다. 전역 직전까지 내 일은 내 손으로 마무리했다. ‘어차피 대충할 거 아는데, 그냥 내가 하는 게 낫지.’ 후임에게 시키고 다시 뭐라고 말을 얹는 게 오히려 더 피곤했다.

대학교에서 동아리 회장을 맡았을 때도 똑같았다. 누가 실수하면 결국 내가 다시 고쳐야 한다는 걸 아니까, 아예 처음부터 내가 했다.

특히나 — 누군가가 어떤 일을 “대충”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면, 그 판단이 서는 순간부터 이미 내가 맡아버렸다. 일이 틀어진 뒤에 다시 부탁을 꺼내는 순간 — 그게 결국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가장 피로한 일이 된다는 걸 여러 번 겪어봤기 때문이다.

분명 예외 케이스가 존재하지만, 대부분 내 판단이 맞았다.

짧은 경험치로 남을 판단해버리는 좋지 않은 성향
짧은 경험치로 남을 판단해버리는 좋지 않은 성향

하지만, 그동안 쌓인 경험으로 모든 사람을 하나의 잣대로 재단해버리는, 매우 좋지 않은 성향이기도 하다.

다만 오래 알고 지내며 서로를 잘 안다고 믿는 몇 명에게는, 그나마 수월하게 부탁을 꺼냈던 것 같다.

가끔은 내가 너무 큰 부담을 준 것 같지만, 그럼에도 항상 잘 도와줘서 너무나 감사하다.

답답한 일이 생겼을 때도 비슷하다. 직접 꺼내서 푸는 게 가장 빠르다는 걸 알면서도, 말을 꺼내기 전에 내가 수습할 수 있는 부분은 먼저 다 정리해두고, 정작 그 사람 앞에서는 아예 꺼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말을 꺼내기 전, 나는 항상 세 가지를 따진다.

  1. 지금이 상대가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인가.
  2. 이 말이 상대에게 지나치게 무겁게 가닿진 않을까.
  3. 말한 뒤에 이 관계가 흔들리진 않을까.

이 세 가지를 머릿속에서 한참 돌려본 뒤에야, ‘그래도 꼭 해야 할 말이다’ 라는 결론이 서야 비로소 입을 연다.

그리고 그때조차 상대가 덜 불편하도록, 표현을 고르고 또 고른다. 그럼에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 안에서는, 그 정도의 고민을 거치고 나온 말 이다.

사실 나는 지금도, 대화와 글이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 고 믿는다. 별것 아닌 듯 건네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때로는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장면을 그동안 몇 번이고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꺼내는 말 앞에서는 이전보다 더욱 조심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제는 안다. 모든 걸 혼자 다 끌어안을 수는 없고, 언젠가는 어떻게든 입을 떼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는 것을.

그래서 요즘은 정면으로 꺼내지는 못하더라도, 티 나지 않게 눈치라도 흘려보려 노력한다. 다만, 애초에 나에게 관심이 크지 않은 사람이라면 대부분은 그 신호를 잘 알아채지 못한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정말로 사람이 바뀌기도 한다.

다만 그런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대부분은 내가 해온 그 행동들을 너무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요즘 내가 가장 자주 곱씹고 있는 자리다.

호의가 계속되면 호이인가..
호의가 계속되면 호이인가..

누군가를 위해서 한 일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그 호의는 그 사람에게 당연함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당연함이 쌓인 뒤에 내가 딱 한 번 실수라도 하면, 그동안의 모든 호의가 한순간에 무색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때 올라오는 감정은 사실, 아직까지도 뭐라고 이름 붙이기 어렵다.

그리고 그 순간에서야 깨닫게 된다. 아, 나는 내심 무언가 기대하고 있었구나 하고. 말로 꺼낸 적도 없고, 겉으로는 “그냥 내가 하고 만다” 는 얼굴이었는데, 마음 어딘가에서는 ‘이 정도 했으면 이 정도는 알아주겠지’ 라며 상대방의 변화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개인적으로 사람에 대한 기억을 꽤 잘 하는 편인데, 그 이유도 여기 있는 것 같다. 상대의 말투, 표정, 어떤 말에 예민해지는지 — 그런 것들을 계속 머릿속에 새겨두고, 다음번에는 더 조심스럽게 다가가려 한다.

과부하
과부하

근데 그게 반복되다 보면, 가끔은 과부하가 온다.

물론 거꾸로 나도, 누군가에게 똑같이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상대가 나에게 베풀어준 것을 어느새 당연하게 여기고, 그래서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준 적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것 또한 내가 풀어야 할 숙제다.

이러한 이유로 혼자 생각이 많아지고, 고민이 많아지고, 최근엔 그런 것들로 머리가 자주 아팠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이걸 이겨내 보려고 택한 방식이, 사실은 그냥 나를 극한까지 몰아넣는 것이었다. 놀지도, 쉬지도 않고. 생각과 고민을 깊이 내려볼 틈 자체를 만들지 않는 쪽으로.

주위에서 비슷한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같은 24시간을 사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카톡-1
카톡-1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잠 좀 자라”
“그러다 진짜 훅 간다, 운동하는 것도 다 소용없다.”

카톡-2
카톡-2

많은 분들이 나를 보고 “워커홀릭” 이라고 말씀해주시곤 한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세상에 진짜 워커홀릭은 없는 것 같다. 일이 정말 좋아서 달려드는 사람보다 — 사실은 피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어서, 그걸 잊으려고 일 속에 자신을 묻어버리는 사람 이 훨씬 많다. 나도 그랬다.

정말 필요했던 건 나를 잠시 내려둘 수 있는 진짜 도피처 였는데, 나에게는 아직 그런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 빈자리를 일로 채웠고, 그것마저 부족하다 싶으면 일을 오히려 더 만들어버렸다. 생각이 올라올 틈 자체를 남기지 않는 쪽으로, 스스로를 계속 밀어붙였던 것 같다.

주위에서 “지쳐 보인다” 는 말을 건넸을 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지금 와서 보면, 그 말들을 진작에 들을 걸 그랬다. 올해 1분기는 정말 놀지도, 쉬지도 않고 살았던 것 같고 — 그게 결국, 나를 크게 쓰러지게 만든 원인이었다.

정작 주위 사람들에게는 늘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일주일 내내 일한다고 그 시간 내내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니니, 쉬는 시간을 꼭 챙겨라.” 그러면서 막상 내 자신에게는 그 말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인데, 내가 뭐라고 24시간 내내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렇게 밀어붙이는 동안, 효율은 효율대로 떨어져가고 있었다.

음악들으면서 글쓰는걸 추천한다.
음악들으면서 글쓰는걸 추천한다.

그래서 4월 셋째 주부터는, 나에게도 조금씩 쉬는 시간을 내어주기로 했다. 주말에는 혼자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한 판씩 음악을 올려놓고 — 그동안 눌러두었던 고민과 생각들을 메모 앱 베어(Bear) 에 조금씩 적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이 회고를 적고 있는 이 순간도 그렇다.

어떻게 보면 회고 쓰기마저 또 하나의 ‘일’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머릿속에 뒤엉켜 있던 생각들이 한 줄 한 줄 정리되는 동안, 복잡하던 머릿속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게 분명히 느껴진다.

물론 모든 이야기를 적기에는 쉽지 않지만, 어느 정도 고민하느라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글자로라도 옮겨놓고 나면 어느 정도는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올해는 유독, 이런 시간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동안 무심히 지나쳐왔던 장면들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여유, 그 여유만큼은 앞으로 스스로 만들어가 보려 한다.


마무리

하루가 아무리 힘들어도, 짧게나마 그날의 기억들을 일기에 적고 있다.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1. 개인의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 성격이라, 적적함을 글 위에라도 풀어내고 싶어서.
  2. 적다 보면, 상대의 잘못이라 여겼던 일에도 결국 내 몫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3. N년 뒤의 내가 오늘의 나를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방법이라서.
  4. 쓰다 보면 오늘 하루의 나에게도 어김없이 부끄러운 구석이 있었다는 걸 마주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나와 함께한 시간을 좋게 기억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내린 모든 선택을 이해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무가치’로만 치부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모두의 기억 속에 남기를 바라는 건 애초에 가능한 일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일 것이다.

다만 몇몇 사람에게만큼은 나와 함께한 그 시간이, 이후의 더 큰 순간들에 덮여 사라지지 않고 그래도 좋은 기억 한 자락으로 남아 있어주기를 바란다.


📚 꿈을 찾아 떠나는 마시멜로 이야기

이 책은 초등학교 때 아나바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기) 행사 에서 우연히 사온 뒤로,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온 책이다.

나는 한 달에 최소 두 권 이상은 책을 읽으려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은 책” 의 기준을, ‘매년 다시 읽을 때마다 다른 문장이 꽂히는 책’ 이라고 여기는 편이다. 이 책이 나에게는 딱 그랬다. 처음 읽었던 초등학교 때와, 이번 1분기에 다시 펼쳤을 때 — 꽂히는 문장이 완전히 달랐다.

초등학교 때 산 책 치고 썡썡하다
초등학교 때 산 책 치고 썡썡하다

책 중간에 “성공 퀴즈” 라는 게 나온다. 주인공 조나단이 에릭에게 던지는 여섯 가지 질문인데, 읽다가 나도 모르게 펜을 들어 내 회고글 위에 하나하나 답을 달아보게 됐다.

성공 퀴즈
성공 퀴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중에 어느 쪽을 먼저 택하겠는가?

사실은 “하고 싶은 일” 을 하며 사는 인생을 꿈꾼다. 그런데 곰곰이 되물어보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있었나? —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 을 하며 살고 싶긴 하지만, 그전에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진지하게 찾아보는 과정이 올해에는 필요할 것 같다.

행복한 일이 생긴다면 먼저 누구에게 전화하겠는가? 불행한 일이 생길 경우에는?

행복한 일은 두 명 중 한 명을 두고 고민할 것 같고, 불행한 일은 — 이상하게도 단 한 명만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 건지, 한참을 멈춰서 생각해봤다.

아마도 기쁨은 나눠 가질수록 커지고, 슬픔은 오래 함께 있어줄 한 사람에게만 맡길 수 있는 것 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여행할 때 머릿속에 있는 한 군데 목적지가 중요할까, 트렁크에 든 백 장의 지도가 중요할까?

목적지가 없다면, 지도 백 장도 그저 종이 뭉치일 뿐 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는 꽤 많은 지도가 쌓여 있는 것 같은데, 정작 목적지가 선명한지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이번 분기에 가장 솔직한 답이 있다면,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려운 일이 생기면 피해야 하나, 도전을 해야 하나?

요즘 드는 “두려운 일” 은 딱 한 가지다. 그 한 가지만큼은 — 아직은 부정하며 피하고 싶다.

나머지 대부분의 일들은, 두려워도 결국 도전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 같다.

굳게 믿는 마음과 행동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행동을 통해 내가 굳게 믿을 수 있게 되는 것. 믿음이 행동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행동이 쌓여서 비로소 믿음이 된다 고 나는 느낀다.

마시멜로의 길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다면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일까?

지금 당장 눈앞의 가치가 더 커 보인다고 성급히 착각하는 것.

눈앞의 마시멜로가 당장은 더 많아 보이지만, 조금만 기다릴 줄 알았다면 시간이 지나 훨씬 더 많은 마시멜로가 되어 돌아왔을 기회 — 그 기회를 스스로 놓쳐버리는 것. 그게 아마 가장 큰 실수일 것이다.

성공 퀴즈 후기

여섯 질문을 다 답변하고 나니,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나는 아직, 내 ‘목적지’ 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완전히 쥐고 있지 않다. 다만 이번 분기를 지나면서 적어도 — 그 질문을 스스로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만큼은, 조금 더 선명해진 것 같다.


🎥 퍼펙트 데이즈

빔 벤더스 감독의 2023년 작품. 도쿄의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는 히라야마라는 남자의 하루하루를 담담히 따라가는 영화다.

오래전에 우연히 봤다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이번 1분기에 문득 떠올라 다시 찾아봤다.

퍼펙트 데이즈
퍼펙트 데이즈

영화 안에는 특별한 사건이 거의 없다. 주인공은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고, 같은 유니폼을 입고,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들으며 출근한다. 점심은 공원 벤치에서, 낡은 필름 카메라로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을 한 장씩 담는다. 퇴근 후엔 목욕탕과 단골 가게, 그리고 잠들기 전 책 한 권. 다음 날도 거의 똑같이 반복된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다. 다만 나는 그 반복 속에서 점점 지쳐갔는데 — 히라야마는 같은 반복을 전혀 다른 얼굴로 살아낸다. 매일 같은 동작을 하면서도, 그의 얼굴 위로는 매번 조금씩 다른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2023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이 괜히 야쿠쇼 코지에게 간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 중반, 가출한 조카 니코가 히라야마의 집에 찾아든다. 니코가 “엄마(히라야마의 누나)와 삼촌은 왜 이렇게 다른 세상에 사는지” 묻자, 히라야마는 이렇게 답한다.

“세상은 여러 개의 세상으로 이루어져 있어. 어떤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아.”

이 대사가 유독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번 1분기 내내 나를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고민의 대부분도 —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끝내 닿지 않는 거리, 끝내 나에게 연결되지 않는 세상 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히라야마는 그 거리를 탓하지도, 억울해하지도 않는다. 그저 — 닿지 않는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담담히 인정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한동안 숨을 죽이고 그 얼굴을 바라봤던 것 같다.

얼마 뒤, 둘은 저녁노을 아래 다리 위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간다. 헤어지기 전, 다리 위에서 서로에게 번갈아 외치는 대사가 있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今は今.” 지금은 지금에.

얼핏 보면 별것 아닌 말 같은데, 이 한 줄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도, 과거를 자꾸 되감지도 말고 — 지금을 지금으로 살라는 것.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내 미래를 대신 살아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의 기대나 시선이 내 삶을 대신 결정해주지도 않고, 과거의 후회가 지금의 하루를 대신 채워주지도 않는다.

결국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 그 하루하루가 조용히 쌓여서 나의 미래가 된다는 것을, 히라야마는 말 대신 자기 삶으로 증명해 보인다.

영화의 또 다른 이름은 코모레비(木漏れ日) —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춤추는 빛과 그림자를 뜻하는 일본어다.

히라야마는 매일 같은 벤치에서 고개를 들어 그 빛을 바라보고, 한 장씩 필름에 담는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단 한 장도 같은 사진이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 자막이, 그 이유를 조용히 알려준다.

코모레비
코모레비

“코모레비는,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뭔가를 이뤄내겠다는 마음이 너무 앞서서, 정작 “지금 이 순간” 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매일의 코모레비를 한 번쯤 고개 들어 바라볼 여유도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온 건 아니었는지.

가려던 방향대로 계속 걸어갈 것이다. 다만 올해부터는 — 결과의 끝에서만 의미를 찾지 않기로 했다. 거기까지 가는 하루하루도, 각각 단 한 번뿐인 빛이라는 것을 조금씩이라도 알아가고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영화가 조용히 남겨준 이야기가 있다.

히라야마는 묵묵히 혼자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영화 곳곳에는 그의 하루에 잠시 스쳐가는 사람들 이 있다. 단골 가게 주인, 노숙자 아저씨, 그리고 조카 니코까지. 그 만남들이 쌓여 그의 “지금” 이 조금씩 다른 결로 빛난다.

내가 살아갈 인생도, 결국 혼자서만 걸어갈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야 할 순간이 분명 올 것이고, 그때만큼은 조금 덜 망설이며 말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

“今は今” — 지금을 지금으로 산다는 것도, 어쩌면 혼자서는 온전히 완성되지 않는 일 일지도 모른다.

다음 분기의 내가 오늘의 이 글을 다시 펼쳤을 때, 그 한 줄만큼은 —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 Vienna, Billie Joel

개인적으로 해외 앨범 중에 가장 좋아하는 두 장을 고르라면 이렇다.

  1. Songs About Jane — Maroon 5
  2. The Stranger — Billy Joel

그중에서도 오늘은 두 번째 앨범의 네 번째 트랙, Vienna 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제목은 낯설 수 있지만, 같은 앨범에 수록된 Piano Man 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이다.

LP 카페에 갔을 때 이 앨범이 꽂혀 있으면, 나는 꼭 이 트랙을 올려놓고 할 일을 한다.

Vienna - Billy Joel
Vienna - Billy Joel

“Slow down, you’re doing fine You can’t be everything you want to be Before your time… Vienna waits for you.”*
천천히 가. 너는 잘하고 있어. 원하는 모든 것이 되기엔, 아직 네 시간은 오지 않았어. 비엔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어.

좋은 노래를 만나면 그 탄생 비화 같은 걸 꼭 찾아보는 편이다.

Billy Joel은 한 인터뷰에서, 미국 청년들이 모든 걸 20대 안에 끝내려고 서두르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이 노래를 썼다 고 밝힌 적이 있다. 그래서 곡 안의 “Vienna” 는 단순한 도시 이름이 아니라 — 언젠가 내가 도달하게 될 삶의 자리, 아직 오지 않은 나의 미래 를 상징하는 단어로 쓰였다고 한다.

퍼펙트 데이즈의 “今は今” 이 영화의 언어 로 건네진 말이었다면, Vienna는 같은 말을 음악의 언어 로 다시 건네주는 곡 같다. 내가 달려가려는 그곳은, 잠깐 숨을 고르고 간다고 해서 사라지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 지금 당장 조급해 보이는 길도, 결국 가야 할 사람은 언젠가 가게 되는 길이라는 것.


드디어 1분기가 지나갔다.

스타트업을 시작한 이후로 내 인생엔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시간은 붙잡을 틈도 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살다 보면 결과만 보고 달리느라, 정작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쌓여온 과정의 무게를 잊어버릴 때가 있다.

나도 그랬다. 주위 몇몇 사람들 제외하고는, 그랬던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이 회고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빠르게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그 길 위에서 지나온 하루하루를 짧게라도 기록해두는 일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이번 분기에 뒤늦게 배웠다. 기록된 하루는, 쉽게 흐려지지 않는다.

성공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지금 잡으려는 이것이, 정말 내가 원했던 성공일까” 하는 질문이 불쑥 고개를 든다. 당장의 결과를 손에 쥐었다고 해도, 그게 내 삶의 온전한 성공 이라 부를 수 있는지 스스로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은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원하던 회사로의 이직이고, 누군가에게는 스톡옵션이나 연봉, 또 누군가에게는 창업의 결실일 것이다. 그런 기준들도 물론 중요하다. 다만 나는 요즘 점점 더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내 옆에 남아주는 사람들이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간다.

솔직히 나도 누군가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시기가 많았고,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준 경험도 적지 않다. 그런데 나이가 한 살씩 들수록, 점점 선명해지는 게 있다. 관계를 꾸준히 이어가는 일, 그리고 나와 결이 맞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내는 일. 이 두 가지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무겁다는 것.

내 감정을 어디에 쏟을지, 또 어디에는 쏟지 않을지를 아는 일, 어쩌면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그런 걸 조금씩 알아간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여러분들은 자신있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들은 자신있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요즘 유독 이런 생각이 자주 들게 된 계기가 있다.

최근 들어 장례식장을 여러 번 다녀왔고, 또 주변에서 결혼하는 친구들로부터 청첩장을 받는 일도 하나둘 생겼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자리와 가장 기쁜 자리를 번갈아 오가다 보니, 문득 혼자 상상해보게 됐다.

언젠가 나에게도 같은 일이 찾아왔을 때, 정말 기쁜 일이 생기든, 정말 힘든 일이 닥치든, 자신 있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나에게 몇 명이나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람들은, 내가 부르면 정말로 달려와 줄까.

이 두 질문 앞에서, 나는 지금도 명확히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다만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올해 내가 조금 더 신경 써야 할 자리라는 것만큼은, 잘 안다.

지치고 힘든 순간, 속마음을 편히 꺼내놓을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번아웃이라는 게 의외로 그리 깊어지지 않는다는 걸, 이번 분기에 몇 번이고 실감했다. 반대로 그런 사람 없이 혼자서 버티려는 순간은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금세 바닥을 드러내더라.

그러니까 당장의 한 걸음을 위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뒷순위로 미루는 일은, 지나고 보면 결국 가장 오래 남는 후회였다.

성공의 크기보다, 그 성공을 함께 기뻐해줄 사람이 곁에 있는지가 훨씬 더 오래 남는 가치다.
올해 1분기를 지나며, 나는 그걸 마음으로, 그리고 아주 명확하게 배웠다.


나는 언제 제일 행복한가?

사실 이 글은 포스팅 예정일보다 하루 이틀 전에 쓰고 있다. 원래 계획엔 없던 문단인데, 최근에 누군가와 나눈 대화가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아서 새로운 섹션으로 추가됐다.

그 날 상대방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개발에 대한 흥미를 많이 잃은 것 같아보인다.”
처음엔 그 말이 꽤 낯설게 들렸다. 그런데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한 가지를 깨닫게 됐다.

요즘 내 안에 쌓여 있던 감정의 결이, 내가 알아채지 못한 사이 상대에게도 전해지고 있었다는 것. 평소 나는 스스로의 감정 컨트롤이 꽤 되는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어떤 시기엔 그것조차 쉽게 흐트러진다는 걸 그제야 인정하게 됐다.

그 대화 이후 혼자 한동안, 이런 질문을 붙들고 있었다.

나는 대체, 언제 가장 행복한 사람일까.

쉽게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막상 스스로에게 물으니 꽤 오래 말문이 막혔다. 생각보다 재미없게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는 자각이 먼저 밀려왔다. 그 당혹감이 오히려 이 질문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만든 계기가 됐다.

일단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개발 이라는 영역부터 생각해봤다.

착각 하나

나는 오랫동안, 내 손으로 만든 서비스에 유저가 많이 모이고 그 숫자가 커질수록 더 즐겁게 개발할 수 있을 거라 믿어왔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건 내 진짜 재미가 아니라 재미라고 믿어온 착각에 가까웠다.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조금 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평일이든 주말이든, 카페나 학교에서 잡담을 하다가도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펼쳐 함께 코딩하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는 밤새고 나서도 정말 아침 일찍 일어나서 먼 곳을 가는 발걸음조차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즐거웠던 것 같다.”

막히는 에러가 있으면 혼자 검색 창과 씨름하기보다, 옆자리 사람에게 “이거 왜 이런 것 같아?” 하고 툭 물어보고, 같이 로그를 들여다보며 농담 섞어 디버깅하던 그런 과정들. 나는 결과물보다 그 과정 속 ‘대화’와 ‘함께 풀어가는 감각’에서 재미를 느끼고, 가장 많이 성장한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대화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동시에 각자의 업무에 파묻혀, 예전만큼 말 섞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여기에 더해서, AI의 영향도 분명히 있다고 느낀다. 예전엔 문제가 하나 터지면 옆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화이트보드 앞에 같이 서서 풀어나가는 게 자연스러웠다. 지금은 모니터를 켜고, 프롬프트 창에 질문을 적는 것부터 시작한다.

프롬프트는 아주 정확하다. 하지만 프롬프트는 내가 누구인지 나의 지금 기분이 어떤지 모른다. “농담 섞어서 대답해줘” 라고 명시하지 않는 한, 농담 하나 먼저 건네주는 법도 없다. 내가 넣은 딱 그 질문에 대해서만 답을 돌려준다.

개발이 즐거운게 아니라 과정이 즐거웠다.
개발이 즐거운게 아니라 과정이 즐거웠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개발에서 진짜 재미를 느꼈던 순간은, 언제나 그 ‘질문 이상의 무언가’에서 나왔다. 서로의 표정을 보며 주고받던 잡담, 코드 얘기하다 느닷없이 새어 나오는 농담, 문제 하나를 같이 바라보던 그 시간. 나에게 필요한 건 그런 결의 대화였는데, 어느새 그 자리가 조용히 사라져 있었다.

물론, 이 변화가 누구 한 사람의 탓은 아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바빠지면서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말을 건네는 여유 자체가 귀해진 시기를 함께 지나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예전보다 주변을 덜 돌아보고 살았다는 걸, 이번 분기에 들어서서야 조금씩 실감했다.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라도 주위를 한 번씩 둘러보려 노력하고 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늦었다는걸 알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해보려는 중이다.

성공과 시간 사이의 작은 딜레마

할 일이 많아지면, 회사 일은 당연히 해내야 하고 그 몫을 처리하기 위해 사람들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뒷순위로 밀린다. 이걸 매일 겪다 보니,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됐다.

내 성장을 위해 외부 활동으로 쏟고 있는 이 시간이, 정말 나에게 가장 큰 가치를 돌려주는 형태일까?

솔직히 말해,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하고 있는 업무에 200%쯤 몰입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적당히 돌아가는 100%만 업무에 쓰고, 나머지 100%를 엉뚱하게도 먼 곳에서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순간들이 부쩍 늘었다.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이 흐르는 ‘업무’라는 자리에서,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낼 여지가 여전히 꽤 남아 있는데 — 정작 그 가능성은 뒤로 미뤄두고, 다른 곳에서만 답을 찾으려 했던 건 아니었는지. 요즘, 그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동아리 활동을 포함해, 내가 개인적으로 벌여놓았던 여러 활동들을 하나씩 정리하거나, 가능한 범위에서 다른 분들에게 위임하려는 작업을 시작했다. 예전에는 이런 활동 하나하나를 ‘이건 분명히 나한테 가치 있는 일이야’라며 스스로 납득시켜왔는데 이번 분기에 그 틀을 한번 객관적으로 벗겨놓고 들여다보게 됐다.

나도 회피한게 아닐까?
나도 회피한게 아닐까?

그리고 문득, 한 가지가 선명해졌다. 이 활동을 통해 나는 더 성장한다는 말은 어쩌면 회사 안에서의 더 어려운 성장을 피하려 했던, 일종의 회피였을 수도 있다는 것. 바깥에서 새로운 걸 쌓아 올리는 일은 생각해보면 나에게 이미 익숙하고 안전한 길이었다. 반대로 지금 이 회사라는 자리 안에서, 같은 동료들과 함께 어떤 벽을 같이 깨나가는 일은 훨씬 더 어렵고, 훨씬 더 느리게 보이는 길이지만 아무도 못하는 가치있는 길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번에 가장 깊게 되짚어본 게 있다.

결국, 나 혼자만 성장하는 건, 사실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

회사라는 이름으로 함께 모여 있는 이상, 내가 그리는 목표는 나 한 사람이 잘해서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같은 자리에 있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자라나야 — 비로소 그 목표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팀원들이 피해본 것 같다.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팀원들이 피해본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요 근래의 나는 이 당연함을 나도 모르게 옆으로 밀어둔 채 달려왔던 것 같다. 그리고 더 무겁게 되짚어보자면 내가 혼자 앞만 보고 달려가는 동안,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팀원들의 동기까지 조금씩 가져와 쓰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각이, 이번 분기의 고민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오래 남은 지점이었다.

어쩌면 이게 내가 처음 팀원들을 모아 함께 시작하던 그 날, 마음속에 품고 있었으나 어느새 흐려져 있던 진짜 이유였던 것 같다. 서로 다른 결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각자 혼자서는 절대 닿지 못했을 자리에 함께 도달하는 장면. 나는 그 장면을 그리고 싶어서, 이 자리를 시작했다.

그 처음의 마음을 바쁘다는 핑계와 ‘개인 성장’이라는 그럴듯한 이름 뒤로 조용히 숨겨둔 채, 한동안 잊고 지냈던 것 같다.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지만, 이미 나의 실수로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버렸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정말 자주 밀려왔다.

그럼에도 2분기에는, 내가 잘못했다고 느낀 만큼 더 노력해서 이 자리로 조금씩 돌아와 보고 싶다.
함께 성장하는 자리로.

외부적인 요인도, 내부적인 요인도 분명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내가, 결과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나한테 속아주면 좋겠다.

도전 과제가, 어느새 손에서 멀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나는 오래전을 떠올리면, 지금 같은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동아리 안에서 제법 잘하는 편이었던 시절에도, 막상 혼자 실무에 들어가 보니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하루하루 마주하는 모든 일이 ‘도전’이었다.

결과보다 과정을 더 좋아한 사람이었다.
결과보다 과정을 더 좋아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개발해야 할 것들이 빠르게 쌓이기 시작했고, 일정이 앞서 달려가다 보니 깊게 고민할 겨를 없이 처리 먼저 하게 되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예전처럼 하나의 문제 앞에서 오래 머무르며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여기에 더해, 도전처럼 느껴지던 것들을 이제는 AI가 꽤 많은 부분 함께 풀어주게 됐다. 덕분에 속도는 훨씬 빨라졌지만 고민하는 시간의 총량은 확실히 줄었다. 나에게 있어 그 ‘고민하는 시간’ 자체가 사실은 재미의 원천이었다는 걸, 이제 와서야 되짚어보게 된다.

결국, 내 질문의 답은 “유저 수”도 “성과”도 아니었다. 나를 가장 즐기면서 살아 있게 만들어준 건 누군가와 함께 나누던 대화, 같이 쌓아가던 고민의 시간, 그리고 한 문제 앞에서 충분히 오래 머물 수 있었던 몰입의 밀도였다.

그 세 가지가 최근의 내 일상에서 꽤 많이 옅어져 있었고 조금만 생각을 전환하면 됐던 것을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너 흥미를 잃은 것 같아 라고 느껴질 만큼 내 모습에도 조금씩 묻어나고 있었다.

이번 분기의 남은 시간 동안, 그리고 다가오는 2분기에는 조금은 그 세 가지를 다시 내 일상 안으로 불러들이며 살아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이전에 좋았던 때로 돌아가 보고 싶고, 문제 하나쯤은 AI보다 내 머리로 먼저 오래 붙들어보고, 주위를 한 번씩 천천히 돌아보는 일부터. 그 작은 회복들이 쌓여, 언젠가 다시 2분기에는 팀원 모두가 **‘개발이 재미있다’**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조용히 바란다.


아직 개인에 대한 즐거움은 찾지 못했다.
나는 무엇을 할 떄 제일 행복한가는 2분기에 한 번 고민해보고 적어보겠다.

TMI

회고랑은 별 상관 없지만, 1분기를 돌아보며 생각난 잡다한 이야기 몇 가지.

  1. 최근에 어린이집 봉사를 다녀왔는데, 정말 힐링이 많이 됐다. 아이들은 어른과는 확실히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다.
  2. 동네에 고소영 배우님이 다녀갔다는 크림빵집이 있는데, 가격도 착하고 맛있다. 근데 최근에 200원 인상된 데다가, 이제 무조건 2개 이상 구매해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저렴한 편이긴 하다.
  3. 주식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종종 트럼프를 원망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삼성전자랑 하이닉스를 사면 월급이 두 배가 되는 것 같아서, 적금을 깰까도 요즘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4. 오늘도 클래스101에서 강의 영상을 찍어달라는 메일이 왔다. 이걸로 일곱 번인지 여덟 번인지 받은 것 같은데, 매번 거의 똑같은 문구라 콜드메일 같다.
    콜드메일
    콜드메일
  5.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얼 위해 사는지 — 최근에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꽤 자주 던졌는데, 아직 답을 내지 못했다. 2분기 안에는 나올까.
  6. 올해 누군가의 생일에 선물로 음식물 쓰레기를 대신 버려주었다. 살면서 처음 해보는 종류의 선물이었는데,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7. 하트시그널 5 정말 기대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없어서 놀랐다. 매 시즌마다 뭔가 점점 인위적이랄까 — 예전의 그 몽글몽글한 감성이 잘 안 느껴진다. 오늘 2화 나온다는데, 지금부터라도 재밌어졌으면 좋겠다.
  8. 토스 모의고사에서 내 코드가 토스 개발자분께 “보고 배울 점이 있는 코드” 로 선정됐다. 좋은 회사 다니시는 분들도 많이 참여했고 연차도 다양했는데, 그 안에서 뽑혔다는 게 생각보다 기분이 많이 좋았다. 강의 때도 잘 짠 몇몇 분들은 “지금 이력서 넣고 코테 보면 붙을 것 같다” 고 해주셨는데, 이직의 욕구보다는 오히려 내가 여태 헛공부한 건 아니구나 하는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울었다. 스스로를 한 번 증명해낸 것만으로도 값어치가 있었다고 느낀다.
    토스리뷰
    토스리뷰
  9. M5 Pro 맥북을 샀다. 내가 좋은 스펙을 고른 것도 맞지만, 약 600만 원은 솔직히 괴랄한 가격이다. 그래도 좋은 기기가 좋은 생산성을 만들어주는 건 확실한 것 같다. 그만큼 더 벌면 되는 거니까.
    맥북 구매
    맥북 구매
  10. 출퇴근 지옥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운전을 거의 안 하는데, 2분기엔 조금씩 더 해봐야겠다.
  11. 나랑 친한 친구 중에 결혼한 사람이 처음 생겼다. 그 소식을 듣고 나서, 친구랑 여러번 이야기하면서 나는 언제쯤 결혼하게 될지, 그리고 누구와 하게 될지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했는지에 대한 고민도 이제야 조금씩 시작하고 있다. 친구말로는 내가 빨리 결혼할 것 같다고 하는데 빠르게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대단해 보이고 부러움을 느꼈다.
    청첩장
    청첩장
  12. zed 에디터를 꼭 사람들이 많이 알고 썼으면 좋겠다. 26년도 4월 23일에 Parallel Agents 기능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요즘 코드를 잘 안 보고 cmux 같은 터미널만 본다는데, 아직은 그래도 코드를 봐야하지 않나 싶다. 이 니즈를 zed가 완벽하게 이번 업데이트로 해소해준 것 같다.
    Rust로 만들어져서 메모리도 덜잡아먹는다.
    Rust로 만들어져서 메모리도 덜잡아먹는다.
  13. Raycast도 굉장히 유용하다.
  14. 내가 생각하는 미래는 서비스의 화면들이 최대한 채팅으로만 구성될 것 같다. 그런 의미로 백엔드를 좀 더 딥하게 공부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커리어 방향성에 대한 고민도 있다. 결국 특히 서버 쪽은 언어나 프레임워크도 중요하지만 그 외의 지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AI 발전에 따라 언어/프레임워크 전환도 쉬워질 것 같은데, 정말 향후에는 해외처럼 Rust가 점점 더 인기 있어지지 않을까 싶다. 일단 Spring을 좀 열심히 공부해보고, Rust도 해보고 싶다. 그냥 나만의 미래 예측이다.
  15. 내가 생각한 방향성대로 움직일 수 있따면 회사가 뭔가 더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 느낌은 그렇다.
  16. 원래도 잠을 잘 못자긴 했지만, 이번 1분기는 진짜 잠 못 드는 밤의 연속이었다. 불면증인가 싶을 정도로.
  17. 2분기에는 영화봐야지.. 정말로.

2분기 목표

1분기를 통째로 돌아보고 나니, 2분기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거창한 변화는 아니고 방향을 조금 틀어보는 정도이다.

이번 분기 내내 오래 남은 고민 하나는 결국 “신뢰” 였던 것 같다. 나는 늘 꽤 오래 고민한 뒤에 말을 꺼내는 편인데, 그 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출신이 더 좋은 사람이 같은 말을 꺼내면 바로 수용되는 장면들이 유독 많았다.

상대방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그 순간순간 혼자 무시당한다 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많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나도 반대편에서 누군가를 출신으로 한 번쯤 재단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반성을 했다. 출신을 얻기 위해 애써온 사람들의 노력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신뢰를 얻을 만한 사람이 되는 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번 분기에 조용히 배웠다.

그래서 2분기의 가장 큰 목표는 하나다. 지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더 잘 해내는 것. 내가 꺼낸 말이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꾸준히 쌓아 올린 시간이 언젠가 나라는 사람에 대한 확실한 증명 이 되어줄 거라 믿기로 했다.

커리어는, 어쩌면 그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정도로 둬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도 욕심 한 줄 정도는 남겨두자면 나도 언젠가는, 한마디를 꺼냈을 때 그 말 자체에 신뢰가 묻어나는 사람 이 되고 싶다. 멀리 있어 보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도 결국은 지금 내 자리에서 시작될 거라고 믿는다.

개발자로서

최근 서버를 좀 더 많이 보게 되면서, 서버와 인프라 쪽을 조금 더 깊게 파야겠다 는 필요가 뚜렷해졌다. 사놓고 완독하지 못한 책들이 몇 권 있다. Real MySQL, Redis — 2분기엔 주말과 출퇴근 시간을 조금씩 떼어, 이 책들부터 제대로 읽고 공부하려한다.

그 외에 개발적으로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정리하면 이 정도다.

  1. 요즘 스프링 + 코틀린을 회사에서 보는 비중이 높아졌다. AI가 아무리 잘해준다하지만, 언어와, 프레임워크에 대한 이해는 필요해서 개인적으로 계속 공부를 해보려고한다.
  2. Tanstack Start 를 한번 제대로 써보기. 요즘 가장 관심 있는 프레임워크다. 조금 더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스터디 사이트를 만들 생각인데 이걸 기반으로 해볼 것 같다.
  3. 워크북 11주차 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그 과정에서 내 프론트엔드 개념도 다시 한 번 점검하기.
  4. AI를 꺼놓고 라이브 코딩 문제 풀어보기. 요즘 내 손이 얼마나 둔해졌는지 한번 제대로 확인해볼 때가 된 것 같다.
  5. 테스팅 라이브러리 — 아직 손에 익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바로바로 칠 수 있을 정도까지 체화하기.

이 정도를 꾸준히 쌓아두면, 회사 일에서도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개인으로서

요즘 문득 복싱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최근에 UFC를 재밌게 보는데 — 멋있다 는 표현은 조금 웃기지만 정말 멋있다고 느낀다. 다만 손을 다치면 안 되는 직업이기도 해서, 욕심은 조금 절제하기로 한다.

최근에 다리를 다쳤을 땐 경사도를 높여 걷는 걸로 대신했는데, 그 기간에 근력 운동 위주로 돌려봤던 게 의외로 너무 좋았다. 그래서 헬스장은 끊어놓은 김에 주 5회 이상 근력 운동 은 꾸준히 가져가려 한다.

러닝도 최근에 한강에서 다시 뛰기 시작했는데, 역시 나는 한강 체질인 것 같다. 오랜만에 뛰니까 옛날만큼 쉽지는 않더라. 그래도 매일 10km 러닝 은 2분기에도 계속 해보려 한다. 체중은 5kg 정도 감량 을 목표로. (내심 10kg까지는 빼보고 싶긴 하다.)

재택하는 날이든 주말이든, 일이 있더라도 조금 더 즐겁게 살아보려 한다. 이왕이면 집 근처 아무 카페 말고, 조금 더 멀리 나가서 분위기 좋은 카페. 좋아하는 LP 카페. 아니면 주위 사람들과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쪽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뇌를 좀 쉬게 해주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확보해봐야겠다.

올해 들어 기타 를 거의 못 쳤다. 벌써 기타를 배운 지 20년(물경력)이 다 돼 간다 그동안 배운 게 아까우니, 조금씩이라도 손에 익혀두려 한다. 운영하는 스터디 는 1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2기도 조금 더 단단하게 운영해보고 싶다.


찐 마무리

이번 1분기 회고는, 결국 그동안 눌러두고 있던 감정들을 담담히 꺼내놓는 글이 되어버린 것 같다. 돌이켜보면 1분기는 좋았던 일들로 채워진 분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회고가 꼭 좋은 일만 적어두는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힘들었던 일을 어떤 방식으로 겪어냈고, 어떻게 풀어나가려 했는지 그 과정을 남기는 것이 회고의 진짜 몫이라고 믿는다. 그래야 나중에 다시 펼쳤을 때 배울 게 있고, 그 배움이 다음 분기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준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올해 내 주변에는 꽤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고, 그 변화의 한복판에 들어서기 전에 지금까지 품어온 감정들을 한 번쯤은 글자로 남겨두고 싶었다. 나중에 이 글을 다시 펼쳤을 때, 내가 예상한 것이 얼마나 맞았고 얼마나 빗나갔는지 — 솔직히 그게 가장 궁금하다.

내가 평소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누군가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많은 경우 신뢰를 미래의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이야기하지만, 내가 느끼는 신뢰는 조금 다르다.

나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도 한결같은 자리에 서서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있는 사람을 볼 때 신뢰가 생긴다. 거창한 약속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작은 실천이 반복되고 쌓일 때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번 1분기 내내 자주 묻게 됐다.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있을까.

만약 신뢰를 주지 못했다면, 그 자리를 어떤 하루들로 채워나갈 수 있을까. 한 번에 답이 나올 질문은 아니다. 다만 이 질문을 품고 하루를 사는 것 자체가, 앞으로의 방향을 잡아줄 것 같다.

이번 분기에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현재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과 대화를 이어가던 중, 문득 스스로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봤다.

한 번도 대놓고 가린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순간도 없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아이러니했다. 과거에 나를 무시했던 원인도 결국 “출신”에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조차 내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었다는 점이 그랬다.

입버릇처럼 “나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해왔으면서, 정작 나 자신의 과정은 무시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이 모순을 1분기에야 겨우 마주했다.


러닝하다 갑자기 생각나 촬영했다. 길은 한가지만 있지 않는다. 어떻게 가도 도착을한다.
러닝하다 갑자기 생각나 촬영했다. 길은 한가지만 있지 않는다. 어떻게 가도 도착을한다.

선택에는 굉장한 고통이 따른다. 이번 분기에는, 나의 잘못된 선택에서 온 고통이 유독 컸다.

문제는, 그 당시에는 잘못된 선택이라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때는 달아 보이고 의심 없는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마시멜로 100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순간의 달달함을 이기지 못해 마시멜로 1개를 집어버렸다.

상황이 어려워지는 걸 피하고 싶어서 쉬운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마치 어려운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려 했지만, 실제로는 쉬운 선택을 하게하며 인생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

당사자는 여전히 모를 수 있고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 할 수 있다.
하지만 깊게 곱씹어 보면서, 나는 그 선택의 잘못됨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그래서 한 번쯤 스스로에게도 물어봤으면 한다.

  • 지금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능동적으로 노력하고 있는지
  • 아니면 남들이 만들어둔 판 위에서 열심히 뛰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길은 직진만 있는 게 아니다. 다양한 길을 걷다가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길이 보일 때가 있다. 물론 뒤로 몇 걸음 돌아가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는 쪽이 쉬울 때가 많다.

하지만 잘못된 상황, 본인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끝까지 밀고 가다 보면 결국 도착조차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되돌릴 수 있을 때 되돌리는 용기가,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시점이 있다.

지금 나에게는 그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회고를 쓰면서, 유난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글 쓴 사람의 이야기’로 스쳐 지나갈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진심으로 읽혀 잠깐이나마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랜 시간 고민을 하여 작성했다.

우리는 자주, 바쁨 속에 자신을 던져 놓고 그것이 곧 성장이라고 믿는다. 하루를 꽉 채워 살아내는 것이, 마치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인 것처럼. 하지만 바쁨은 방향이 아니라 속도일 뿐이다.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함께하는 사람이 없거나 방향이 맞지 않으면 결국 더 멀리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가끔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봤으면 한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가 가장 좋았던 날은 언제였고, 그때의 나는 지금과 무엇이 달랐을까.
지금의 나는, 내가 바라던 나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있을까.

답이 한 번에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
질문을 품고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는 셈이니까.


1분기는 입사 이후로도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고, 스트레스도 유난히 컸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이번 분기를 견뎌낼 수 있었던 건, 결국 옆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켜준 고마운 사람들 덕분이었다.

이 글의 끝에서나마, 그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다음 분기에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좋은 소식 하나쯤 품고 다시 회고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